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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 기억
강주형, 김보경, 이채민
2025년 6월 11일 (수) - 7월 6일 (일)
우리가 인지하고 저장하는 대부분의 감각적 경험은 고정되지 않은 채 흐르며 소멸한다. 감정, 사고, 환경, 움직임과 같은 현상들은 명확한 구조를 갖기 이전에 사라지고, 그 잔상은 흔히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흩어진다. <형상 기억>은 이러한 비가시적 흐름들이 일정한 구조로 포착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형상 기억>은 기억, 감정, 생명성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들이 시각예술의 매체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화면 위에 가시화되는지를 다룬다. 세 명의 작가—강주형, 이채민, 김보경—은 각기 상이한 조형 언어와 매체를 통해, 고정되지 않는 내면의 흐름을 물질화하려는 전략을 제시한다. 이들은 형상의 정합성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오히려 감각적 순간을 고정하려는 시도 자체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강주형의 작업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시간 기반 매체를 활용하여 기억의 비선형적 구조를 가시화한다. 반복과 중첩, 상호 충돌하는 사물들의 관계는 전통적 회화의 구도를 해체하며, 기억이 생성되고 소실되는 메커니즘 자체를 모방한다. 그의 작업은 특정 서사를 전달하기보다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시각적 모델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비서사적이며 분석적이다.
김보경은 생태적 유기체로서의 화면을 구성한다. 그의 작업은 자연물의 형상보다 그것들이 내포하는 시간성과 정서적 흐름에 주목한다. 반복적 색면과 층위적 구조는 자연의 순환성, 생명의 지속성, 감정의 퇴적을 시각적으로 전환하며, 감각의 휘발성을 억제하고 이를 정지된 이미지 안에 조직한다. 그의 회화는 감정적이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조형적이며, 자연과 인간 감각의 통합적 구조를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채민은 감정 상태의 역동성을 회화적 물성 안에 고정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화면 구성은 감정의 미세한 변화와 운동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물감과 붓의 운동 자체를 기록한다. 이는 감정을 단순히 표현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물질성과 감정의 물리적 진동이 만나는 지점을 실험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세 작가의 작업은 '사라지기 쉬운 것들'을 고정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서사적 재현이 아니라, 감각의 기호화와 시간의 구조화에 가깝다. <형상 기억>은 심리학적 이론에서 차용된 것으로, 시각적 표상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본 전시는 ‘형상 기억’을 예술적 실천으로 확장하며, 감각의 휘발성과 기억의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하나의 시각적 방법론으로서의 형상화를 탐구한다. 다시 말해, 본 전시는 감각을 저장하고 기억을 시각화하며, 비물질적 흐름을 조형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의 집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