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언바운드 기획
멀리, 또 가까이
리리리, 조연주, 황은실
2026년 6월 3일 (수) - 7월 5일 (일)
<멀리, 또 가까이>는 리리리, 조연주, 황은실 작가로 구성된 3인전으로, 세 작가의 각기 다른 재료와 방법론 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하나의 거리감에 대한 전시이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읽히던 것이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논리로 분해되고, 반대로 가까이서만 감지되던 것이 물러서는 순간 비로소 전체의 윤곽을 드러낸다. 본 전시는 그 두 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 즉 보는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화면의 운동성에 주목한다.
리리리 작가는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형태를 추적한다. 광목, 장지, 그래프 페이퍼 위에서 점과 선이 이어지고 끊기며 만드는 구조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유기적 흐름처럼 읽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각각의 단위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작가는 도형에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의미는 형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태들이 만나고 이어지는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리리리의 화면은 그러한 감정의 잔상이 구조가 되는 순간을 붙잡는다.
조연주 작가는 창(窓)을 경계가 아닌 통로로 다룬다. 그의 작품에 그려진 풍경들은 안과 밖,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지 않고 서로 스며들게 한다. 멀리서 보면 빛의 스펙트럼처럼 번지는 색채의 덩어리로 읽히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캔버스와 색채 사이로 물감이 스민 미세한 물질성이 드러난다. 조연주에게 창은 닫힌 프레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가 겹치는 막(膜)이며, 개별 음절이 모여 하나의 노래가 되는 것과 같이, 각각의 작은 작품들이 모여 한 화면의 흐름을 이루며 비로소 작업이 완성된다.
황은실 작가는 보는 행위 자체를 작품화한다. 산책 중에 직접 포착한 창에 비치는 풍경과 온라인에서 수집한 스크린샷 이미지가 캔버스 위에서 콜라주되며 패치워크처럼 겹쳐진다. 구상과 추상, 그리드와 제스처가 경계 없이 뒤섞인 화면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채 덩어리로 보이지만, 가까이서야 비로소 수십 개의 붓자국이 쌓아 올린 미세한 터치의 층위가 감지된다. 작가가 말하는 “미세 지각”은 바로 이 거리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디지털 편집을 배제한 채 직관과 즉흥에 의존하는 그의 콜라주 방식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그리는 순간의 감각 자체를 화면에 남긴다.
<멀리, 또 가까이>에서 리리리, 조연주, 황은실 작가의 화면은 어느 한 자리에서 완결되지 않으며 동시에, 관객에게 하나의 거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물러서면 다른 작품이 되고, 다가서면 또 다른 화면이 된다는 점에서, 본 전시는 관객이 세 작가의 작업을 바라보는 방법을 통해 두 거리 사이를 오가는 이동 자체와, 완결되지 않은 화면 속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미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Tangling, Trembling
고결, 최정우
2026년 4월 8일 (수) - 5월 17일 (일)
<Tangling, Trembling>은 회화와 디지털 페인팅이라는 상이한 매체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두 작가, 고결과 최정우의 2인전이다. 본 전시는 두 작가가 공유하는 형식적 역설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매체로 제작되는 고결의 작업은 손의 물성을 환기하고, 전통적 회화 매체를 고수하는 최정우의 작업은 디지털 이미지의 감각을 닮아 있다. 매체와 표면 사이의 이러한 간극은 단순한 기법적 실험이 아니라, 두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탐구해온 정체성과 내면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고결은 인간 내면의 경험을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타인의 내면에 완전히 접근할 수 없다는 인식론적 한계를 전제로, 그는 자신의 감각과 감정, 사유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조형 요소들의 리드미컬한 구성과 은유적 상징이 결합된 그의 화면은 고정된 서사보다 감정의 운동성 자체를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디지털 페인팅을 지클레(Giclée) 프린트로 출력하는 방식은 복제와 원본,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며, 이미지가 어떤 물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동시에 제기한다.
최정우는 정체성과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회화적 언어로 풀어낸다. 그는 사회적 규범과 자신의 정체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감각의 균열을 기록하기 위해 야토(Yato)라는 상징적 인물을 고안했다. 야토는 특정 젠더 규범이나 고정된 형태에 귀속되지 않으며, 타자의 감정과 제스처를 흡수하고 재해석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세밀한 드로잉에서 출발해 5미터를 넘나드는 대형 캔버스로 확장되는 그의 작업은 회화의 물성과 디지털 실험을 병행하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 위에서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고 변형되는지를 탐구한다.
두 작가는 매체와 형식의 층위에서 서로를 반전시키는 동시에, 주제의 층위에서 수렴한다. 언어 이전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려는 시도,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방식인 것이다. <Tangling, Trembling>은 이 두실천이 교차하는 지점을 하나의 전시 공간 안에서 보여준다. 관객은 매체의 역설과 이미지의 실재성 사이에서, 두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구축해온 시각 언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What remains after us
곽은지, 백하, 우이진
2월 25일(수) - 3월 29일(일)
<What Remains After Us>에서 회화는 형상화할 수 없는 내면의 파동과 비가시적인 시간의 흐름을 붙잡아두는 물질적 장치로 기능한다. 본 전시는 곽은지, 백하, 우이진 3인의 시선을 통해, 사건과 감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존재의 질감’과 ‘잔여’의 상태–완결 이후에도 남아 미세하게 작동하는 감각과 에너지–를 탐구한다. 세 작가에게 캔버스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이자 외부 세계와 자아가 충돌하며 빚어낸 미학적 잔류물의 집합체이며, 물질과 비물질, 감정과 구조, 개인적 경험과 보편적 감각 사이를 가로지르며, 존재 이후에 남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장이다.
곽은지의 작업은 ‘균형’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가 다루는 균형은 안정된 중심이나 완결된 조화가 아닌 끊임없는 ‘조율의 과정’으로, 붓의 압력과 물감의 밀도, 화면 위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흐름이 교차하며 형성되는 ‘진행 중인 사건’에 가깝다. 그래픽 악보의 개념에서 출발한 그의 화면은 고정된 도상이 아니라 리듬과 간격, 밀도와 여백이 구성하는 관계 속에서 구축된다. 층층이 중첩된 레이어는 단순한 색면이 아닐, 신체의 움직임이 남긴 시간의 단위이며, 물질로 변화된 감각의 기록이다. 특히 작가의 최근 빛과 밤이라는 비가시적 현상을 다루는 작업은 실체로 고정되거나 포작하기 어려운 비물질적 현상을 물질적 표면 위로 번역하려는 시도이다. 이 과정에서 균형은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계속해서 흔들리고 재조정되는 에너지의 순환으로 드러나며, 그의 작업이 남기는 것은 형상이 아니라, 형상이 생성되고 해체되는 사이에서 요동치는 시간의 잔류이다.
백하는 작업을 통해 감정의 생존 전략을 탐색하며 불확실한 현실 너머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에게 회화는 불확실한 현실을 견디기 위한 사유의 구조이자 심리적 방어기제이며, 그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파란색은 단순한 색채의 선택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감정의 층위이다. 파란색은 과거의 불편함과 억압의 기억이 남긴 잔상인 동시에,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심리적 보호막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특정 사건의 서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것이 남긴 감정의 궤적을 역추적하며 화면을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화면은 상처를 박제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재맥락화하고 새로운 의미로 전환하는 장이 된다. 억압의 순간에서 벗어나려는 상상은 캔버스 위에서 푸른 빛의 층위로 치환되며,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그 너머를 지향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남는 것은 사건의 기억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감당하고 다시 살아내려는 실존적 의지이다.
우이진은 삼정의 잔상을 구조화하여 내면의 다층성을 시각화한다. 숲, 밤, 우주, 별자리와 같은 모티프는 특정한 서사를 재현하는 상징적 도상이기보다, 감정이 작동하는 층위와 밀도를 드러내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획’은 신체의 시간성을 기록하는 흔적이며, ‘도식’은 세계를 조직하려는 인식의 구조로서 화면 위에서 팽팽한 긴장을 형성한다. 이는 감각의 유동성과 구조의 질서를 병치함으로써 그의 감정이 장식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한다. 특히 분채를 쌓아 올린 물질적 깊이와 알루미늄 배경의 반사성은 작품을 단일한 이미지로 고정시키지 않고, 관람자의 위치와 광원에 따라 반응하며, 하나의 장면이 아닌 ‘발생하는 사건’으로 작동한다. 그의 회화는 작가의 내부 우주에서 발신된 신호가 관객의 시선과 충돌하며 발생하는 일시적 접속의 장이며, 그 신호가 타인의 내면과 연결되어 서로 다른 내부의 우주가 교차하는 순간의 진동이다.
<What Remains After Us>는 남겨진 것들을 수집하거나 애도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것들이 여전히 현재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지 목격하는 전시이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단순한 흔적이 아닐, 또 다른 시작의 조건이 남는다는 것을 전제로, <What Remains After Us>는 그러한 조건을 발견하고 감각하게 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유연하게 단단하게
김아야, 서은정, 정선경
1월 14일(수) - 1월 25일(일)
<유연하고 단단하게>는 서로 다른 재료와 조형 언어를 사용하는 김아야, 서은정, 정선경 작가가 삶을 통과하며 형성한 자신만의 삶의 태도와 구조를 다루는 전시이다. 본 전시는 개인의 경험을 서사적으로 나열하기보다, 그 경험들이 축적되고 변형되며 만들어낸 상태와 감각의 구조에 주목한다. 섬유, 흙, 금속이라는 물성은 단단함과 유연함이라는 상반된 성질을 동시에 지닌다. 세 작가는 이러한 재료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감정을 감싸고 재구성하는 과정,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순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작품 속 형상들은 고정된 결과라기보다, 선택과 반복, 그리고 시간의 압축 속에서 형성된 과정의 흔적에 가깝다.
김아야는 감정과 기억이 축적되고 소거되는 과정이 개인의 정체성에 어떠한 구조를 남기는지 탐구한다. 작가의 작업은 특정 사건의 서술보다, 경험 이후에도 지속되는 감정의 잔여와 그 물리적 감각에 주목한다. 삶의 과정에서 형성된 상처와 불안, 회복의 흔적은 작가에게 자아를 구성하는 중요한 재료로 작동한다.
섬유와 자수는 이러한 감정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주요한 매체이다. 반복되는 바느질의 행위는 감정을 봉합하는 동시에 드러내는 이중적인 과정으로 기능하며, 실과 펠트는 유연하면서도 쉽게 해체되지 않는 기억의 성질을 닮아 있다. 작가는 이 친밀한 재료를 통해 언어로 환원되기 어려운 감정의 밀도와 시간을 층위적으로 쌓아 올린다. 특히 최근 작업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커버업 타투’는 상처를 감추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흉터 위에 새로운 서사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는 개인의 취약함을 삭제하는 행위가 아닐, 그것을 하나의 형태로 재구성하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선택에 가깝다. 김아야의 작업에서 상처는 은폐의 대상이 아닐, 다시 쓰이며 다른 의미를 획득하는 지점이다.
서은정은 구체적인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순간의 감각과, 그때 발생하는 정신의 상태에 주목한다. 작가는 외부 자극에 대한 찰나의 반응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면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이를 도자를 기반으로 한 조형적 언어로 전환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들은 완결된 조형이라기보다, 무언가를 간신히 지탱하며 존재하는 어떠한 상태에 가깝다. 흙은 쌓이고 눌리며 몸체를 형성하지만, 동시에 쉽게 갈라지고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작가는 이러한 모순적인 물성을 제어하기보다 그대로 수용하며, 반복적인 손의 개입과 물리적 압력을 통해 형태를 만들어간다. 작업 과정에서 고온에서 흐르고 뭉친 유약은 표면을 가리거나 변형시키며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작품은 형식과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채, 긴장과 불안정, 그리고 미묘한 유머가 공존하는 상태로 남는다. 서은정의 작업은 안정과 붕괴 사이의 균형 위에서, 존재가 유지되는 순간의 감각을 포착한다.
정선경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개인의 움직임과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삶의 경로를 기하학적 구조로 풀어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구와 원기둥은 구체적인 인물을 묘사하기보다, 희망과 방향성,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을 상징하는 조형적 요소로 작동한다.
금속판을 투각하는 방식은 단순한 형상 제작을 넘어, 지나온 경로와 선택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다. 원기둥이 통과한 자리에는 선과 여백이 발생하고, 그 축적은 개개인의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암시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삶이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이동과 반복 속에서 형성된 어떠한 구조 체계임을 드러낸다. 정선경 작가의 작업은 전통 금속공예 기법을 기반으로 하되, 그 시각적 전형성에 머무르지 않고 장신구, 오브제, 평면 작업으로 형식을 확장하는 실험을 지속한다. 그의 작업에서 금속은 단단한 재료인 동시에, 다양한 해석과 서사를 수용하는 유연한 매체로 기능한다.
본 전시에서 유연함은 불안정함이나 취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에 반응하고 형태를 바꾸려는 능력으로 작동한다. 동시에 단단함은 완결이나 고정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유지되는 구조와 태도를 가리킨다. 세 작가의 작업은 이 두 성질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함께 작동하며 삶을 지탱하는 방식을 보여준다.